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게시물 (81건)

도곡집 제8권 / 응제록(應製錄)- 한성우
도곡집 제8권 / 응제록(應製錄)전 참판 한성우에게 내린 치제문 신묘년(1711, 숙종37) 〔前參判韓聖佑致祭文 辛卯〕선왕께서 훌륭한 사람들을 등용하시니 / 宣后宅俊충정공이 보필하였고 / 有弼忠靖또한 문원공이 있었으니 / 亦維文元그 학문 성인을 바라는 것이었네 / 其學希聖경은 이 두 대현을 이어서 / 卿承兩大대대로
승지 증(贈) 이조 판서 나은(懶隱) 이공(李公) 시장(諡狀)- 이동표(李東標)
승지 증(贈) 이조 판서 나은(懶隱) 이공(李公) 시장(諡狀)- 이동표(李東標, 1644~1700)-사신(詞臣) 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.연암집 제9권 별집 / 고반당비장(考槃堂秘藏)연암(燕巖) 박지원(朴趾源, 1737~1805)금상(今上) 8년 갑진년(1784)에 영남 유생 아무개 등 몇 사람이 대궐 문 앞에 엎드려 소장을 올려 다음과 같
우후(虞侯) 김준민(金俊民)의 복수 사건
연려실기술 별집 제13권 / 정교전고(政敎典故) / 형옥(刑獄)○ 인조 조에 우후(虞侯) 김준민(金俊民)의 종 금이(金伊)가 준민의 집에 들어가서 팔다리를 부러뜨려 죽였는데, 그 아들 성일(成一)ㆍ성구(成九)가 장사를 지내지 않고 도적 괴수의 동정을 살피다가, 시장 가운데서 김이와 그 부모를 잡아가지고 자기들이 손수 도
김 삭주(金朔州) 형제의 복수전(復讎傳)
김 삭주(金朔州) 형제의 복수전(復讎傳)송자대전 제214권 / 전(傳)김성일(金成一)의 자는 응건(應乾)인데, 광주(光州) 평장동(平章洞) 사람으로 담양부(潭陽府)에서 대대로 살았다. 그의 아버지 준민(俊民)은 벼슬이 우후(虞候)였고, 어머니는 하동 정씨(河東鄭氏)였는데, 용(龍)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고 공을 낳았기
백록(白麓) 신공(辛公) 행장- 신응시 광주목사
백록(白麓) 신공(辛公) 행장- 신응시 광주목사송자대전 제206권 / 행장(行狀)고조부 익조(益祖)는 직장(直長)을 지냈고, 고조모는 강씨(康氏)이다.증조부 석(奭)은 수의부위(修義副尉)로서 사복시 정(司僕寺正)에 추증(追贈)되었고, 증조모는 원주 변씨(原州邊氏)이다.조부 윤형(尹衡)은 이조 참의(吏曹參議)에 추증되었고,
偕光牧李子壽 喜聃。宿于錦城之琴鶴軒。話間次主倅韻- 오재집(寤齋集) 권2
偕光牧李子壽 喜聃。宿于錦城之琴鶴軒。話間次主倅韻- 오재집(寤齋集) 권2신상(申祥), 정이(定而)이다. 樽酒琴軒信宿期。可堪斜日獨歸時。春光已着江邊柳。繫得離愁箇箇枝。*이자수(李子壽)는 이희담(李喜聃, ?~?) 광주목사이다. 1714.8.28 광주목사로 제수됐다.
蓬海錄- 安村集 권3
蓬海錄- 安村集 권3박광후(朴光後, 1637~1678), 자는 사술(士述)이며 호는 안촌(安村)이다. 송시열(宋時烈)의 문인이다.丁巳九月二十七日。與高斗經,柳漢徵,柳應壽,三從弟光一同行。十月十一日。到長鬐縣。尋先生謫廬。兩三茅屋。依在山下。中有稍大一家。以山竹作編爲籬。高可三四丈。南有一小門。僅僅出
《고산유고(孤山遺稿)》 해제(解題)
1. 머리말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고산(孤山) 윤선도(尹善道, 1587~1671)의 시문집 《고산유고(孤山遺稿)》를 번역한 것이다.고산은 주지하듯이 일찍부터 국문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. 특히 〈어부사시사(漁父四時詞)〉를 비롯한 일군의 시조(時調) 작품에서 보여 준 뛰어난 문학적 성취는, 그를 송강(松江) 정철(鄭澈,
《고봉집(高峯集)》 해제(解題) 2- 생애와 학문
기대승(奇大升, 1527~1572), 사단칠정(四端七情)의 논(論)을 씀1. 머리말이 책은 고봉(高峯) 기대승(奇大升:1527~1572)의 문집과 저술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4책으로 출판한 것이다. 《고봉집(高峯集)》은 198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하여 펴낸 바 있다. 1970년에 간행된 석인본을 대본으로 한 기왕의 국역서
문헌공(文憲公) 고봉(高峯) 기 선생(奇先生) 신도비명 병서(幷序)
고봉전서(高峯全書)  보유  - 조순(趙淳) 고봉 선생이 서거하신 지 431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다. 우리나라에는 그동안 치란(治亂)과 흥망(興亡)의 자취가 전광석화(電光石火)처럼 지나갔고 왕조도 점차 쇠퇴하여 마침내 경술년의 국치(國恥)를 당하였으며 광복 후에도 국토가 양단되고 국론이 분열되어 마침내 내
고봉별집 부록 제1권 / 제문(祭文)- 정철
문인 정철(鄭澈) 송강(松江)소자(小子)가 선생을 사모한 지 오래되었으나 오늘에 이르러 더욱 생각이 간절해집니다. 그 까닭은 흐려져 가는 사류(士類)의 추향을 누가 밝히고 저하되어 가는 세상의 도의를 누가 높이겠는가를 생각할 때 높이고 밝히실 분은 오직 우리 선생이시기 때문입니다. 선생이 가신 후로는 이 세상에
창의사 김공 정렬사 비(倡義使金公旌烈祠碑)- 계곡선생집 제13권 / 비명(碑銘) 9수(首)
만력(萬曆) 계사년(1593, 선조 26) 봄, 명(明) 나라 군사와 우리 군대가 진격하여 경성(京城)의 왜적에게 육박해 들어가자 경성의 왜적들이 남쪽으로 달아났다. 이에 창의사 김공이 군사를 거느리고 왜적을 추격하여 영남에 들어간 뒤 진주(晉州)에 군사를 주둔시켰다. 이해 6월 갑진일에 왜적이 무리들을 총동원하여 진주를
송시열, 박광후와 이민서에 화운함
송자대전 제1권 / 시(詩)○오언 고시(五言古詩) 부 사언(附四言) 박 상사 사술 광후 이 익양 사군의 시에 차운한 시에 화운하여 언실의 담대가 보인 정중한 뜻에 사례하다〔和朴上舍士述 光後 所次翼陽使君韻 以謝偃室澹臺鄭重之意〕 옛날 우리 자양옹께서 / 昔我紫陽翁대은병 봉우리에 거처할 적에 / 身居大隱屛
문간공(文簡公) 이민서(李敏敍)의 사우에 현액을 청하는 상소 - 영조 1년
고 판서 문간공(文簡公) 이민서(李敏敍)의 사우(祠宇)에 현액(顯額)을 내려 주기를 청하는 나주(羅州)의 유학 최규(崔珪) 등의 상소 - 영조 1년 을사(1725) 2월 20일(무자) 맑음        나주(羅州)의 유학 최규(崔珪) 등이 상소하기를,“삼가 아룁니다. 신들이 제현(諸賢)을 제사 지내
광주로 원배되었던 부수찬 강박의 상소 - 영조 즉위년
전 교리 김홍석(金弘錫)과 같은 관사의 동료가 될 수 없는 혐의 등을 이유로 체직해 줄 것을 청하는 부수찬 강박의 상소 - 영조 즉위년 갑진(1724) 11월 24일(갑자) 맑음         부수찬 강박(姜樸)이 상소하기를,“삼가 아룁니다. 신은 맡은 직임에 대하여 참으로 몹시 외람되이
송시열 등을 원손의 보도에 쓰도록 아뢰다- 인조 26년
희정당에서 대신 등을 인견할 때 영의정 김자점 등이 입시하여 사역원 역관 등의 문제에 대해 논의하였다 - 인조 26년 무자(1648) 10월 13일(갑진) 맑음        상이 희정당(熙政堂)에 나아가 대신과 비국 당상을 인견하였다. 영의정 김자점(金自點), 좌의정 이경석(李景奭), 병조 판
광주 이의우 등 농서를 구하는 구언 전지에 대한 배의 등 27명의 상소문 - 정조 22년
농사를 권장하고 농서를 구하는 구언 전지에 대한 배의 등 27명의 상소문 - 정조 22년 무오(1798) 11월 30일(기축)        농사를 권장하고 농서(農書)를 구하는 윤음을 내렸는데, 거기에 이르기를,“내년 기미년은 바로 선왕께서 적전(籍田)에서 친히 밭을 간 해이다. 50년 간을 임금
김인후ㆍ유팽로 등의 사액을 청하는 상소 - 영조 32년
옥과 현감 송명흠이 올린 김인후ㆍ유팽로 등의 사액을 청하는 상소 - 영조 32년 병자(1756) 4월 14일(신해)        옥과 현감(玉果縣監) 송명흠(宋明欽)이 상서(上書)하였는데, 대략 이르기를,"<중략>신은 삼가 생각하건대, 김 인후는 높은 자질과 바른 학문으로서 효릉(孝陵)
인경 왕후의 지문 - 숙종 7년
인경 왕후의 지문 - 숙종 7년 신유(1681) 2월 22일(병오)지문(誌文)에 이르기를,“삼가 우리 현종 대왕(顯宗大王)을 생각하건대 종사(宗社)의 대계(大計)를 깊이 생각하셔서 미리 우리의 금상 전하(今上殿下)를 세워 세자(世子)를 삼으시고, 이미 또 옛 제왕(帝王)의 흥망 성쇠(興亡盛衰)가 비필(妃匹)로 말미암지 않는 바
박광원이 광주에서 왔다가 돌아갈 적에 절구 두 수를 지어 작별하면서 주다〔朴光元 自光州來其還歸作二絶贈別〕 - 한포재집
박 도사 광원 가 광주에서 왔다가 돌아갈 적에 절구 두 수를 지어 작별하면서 주다〔朴都事 光元 自光州來其還歸作二絶贈別〕 - 한포재집 제2권 / 시(詩) : 이건명(1663~1722)1.절해고도엔 찾는 발길 없어 / 絶海無人問온종일 사립문 닫혔었는데 / 荊扉盡日關고맙게도 그대가 멀리서 방문하니 / 感君勞遠訪마주 대하곤 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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